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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즐거워할 만한 것은 많습니다. 귀에는 소리가, 눈에는 색깔이, 입과 코에는 냄새와 맛이 그러하지요.1) 이러한 것들이 눈앞에 몰려들어 마음을 흔들면, 반드시 온갖 지혜를 다 짜내고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내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려고 하지요. 그러나 그 좋아하는 바는 불과 잠깐 사이의 일일 뿐입니다. 여러 가지 음악이 떠들썩하거나 맑은 노래 소리가 울려 퍼지거나 간에, 연주가 한 번 끝나고 나면 산은 텅 비고 물만 흐를 뿐이지요. 하얗게 분을 바르고 새까맣게 눈썹을 칠하고서 웃음과 교태를 바치는 여인이 있다 하더라도, 이들이 한 번 흩어지고 나면 가물거리는 촛불과 지는 달빛만 비칠 뿐이지요. 난초와 사향이 향을 풍겨도 한 번 냄새를 맡고나면 그만이지요. 맛난 고기가 가득 차려져 있어도 불과 한번 먹고 나면 그만이지요. 이 모두가 태허(太虛)에 회오리바람이 먼지를 쓸어 가버린 것2)과 다름이 없겠지요.
이에 비하여 눈과 귀에도 즐겁고, 마음과 뜻에도 기뻐서, 빠져들수록 더욱 맛이 있어 늙음이 이르는 것도 알지 못하게 되는 것은3) 책을 이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비록 혼자 호젓한 때 적막한 물가에 있다 하더라도, 문을 닫고 책을 펼치고 있노라면, 완연히 수백 수천의 성현이나 시인, 열사와 더불어 한 침상 사이에서 서로 절을 하거나 질타하는 것과 같으리니, 그 즐거움이 과연 어떠하겠습니까? 사람들 중에 나의 법도를 따르고 나와 마음을 함께하는 이는 거의 드물겠지요. 육예(六藝)에 종사하지 않는다면 그만이겠지만, 종사하는 이가 있다면 책과 더불어 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 금과 옥은 보배고, 문장도 또한 보배지요. 백 근이나 되는 묵직한 물건은 보통사람이라면 감당하기 어렵겠지만, 다섯 수레의 책도 돌돌 말면 가슴 속 심장 안에 넣어 간직해둘 수 있을 것이요, 이를 쓰면 조화에 참여하고 천지에 가득하게 되겠지요.
아, 사람이 어찌 쉽게 늘 이를 누릴 수 있겠습니까? 지금 세상에 이를 누릴 이가 그 얼마나 되겠습니까? 제가 당신과 알게 된 지는 오래되었으나 만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사귐이 얕은데 말이 깊은 것은 선철께서 경계한 바지요.4) 그런데도 당신은 저를 못났다 여겨 멀리하지 않으셨으니, 이 때문에 감격하여 부끄럽습니다. 보답을 하고자 생각을 하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예전에 당신의 문장을 보았습니다. 또한 가히 정교하고 치밀하다고 말할 만하였습니다. 그러나 공자께서 “좋아하는 것은 기뻐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기뻐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같지 못하다.”5)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대개 배울 줄은 알지만 좋아할 줄 모르는 자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좋아하지만 그 뜻을 가다듬어 그 힘을 다하지 않는다면, 앞서 말한 입과 코, 귀, 눈이 누리는 짧은 즐거움과 그 거리가 한 치도 되지 않는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저와 당신이 서로 권면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말이 망령되다 마시고 가려 받아들이신다면 참으로 다행이겠습니다.
1) 《맹자》에 “입은 좋은 맛에 대하여, 눈은 좋은 색에 대하여, 귀는 좋은 소리에 대하여, 사지는 안일함에 대하여 취하려 드는 것이 본성이다.[口之於味也, 目之於色也, 耳之於聲也, 四肢之於安逸也 性也]”라 하였다. 2) 왕양명(王陽明)의〈남원선에게 답하는 글[答南元善]〉에 “만약 눈앞의 먼지를 씻고 귀속의 마개를 뽑아 버린다면 부귀와 빈천, 득실과 애정이 이르는 것이 마치 회오리바람과 떠다니는 노을이 태허에서 오가면서 변화하는 것과 같아서, 태허의 실체는 늘 텅 비어 막힌 것이 없을 것이다[若洗目中之塵, 而拔耳中之楔, 其於富貴貧賤得喪愛憎之相值, 若飄風浮靄之往來變化於太虚, 而太虚之體, 固常廓然其無碍也]”라 하였다. 3) 공자가 《논어》에서 “발분하여 밥 먹는 일도 잊고 학문을 좋아하여 근심을 잊어서, 몸이 늙어가는 것도 알지 못한다.[發憤忘食, 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라 한 말을 바꾼 것이다. 4) 《전국책(戰國策)》에 교분이 얕은데 경솔하게 깊은 내용을 말하는 것을 경계하라는 말이 보인다. 5) 《논어》〈옹야(雍也)〉에 “도를 아는 것은 도를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고, 도를 좋아하는 것은 도를 즐기는 것만은 못하다.(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라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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