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학칼럼

전통 명리학의 변천

청무장 2010. 11. 4. 10:03

 

전통명리학의 변천과 전개 

 

전통 명리학이란 조선시대의 명과학을 대상으로 구성된 용어이다. 현대 명리학과 많은 부분이 같지 않다. ‘명과학이란 명과명에 관한 과제를 살피는 학문을 의미한다. 이러한 정보는 명리학과 관련된 관리와 학생을 선발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법전이나 일부 문집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통명리학에 거론된 명리학 문헌은 20여 종이 된다. 어떤 범주까지 포함시켜야에 따라 다소 증가할 수도 있다. 그 가운데 3대 문헌이라고 할 수 있는원천강53남지남자평3명통변연원그리고협길통의를 고찰하여 전통명리학의 실체에 접근하고자 한다.

 

1절 전통명리학의 역사적 변천

 

》《원천강은 배강하고 서자평·응천가·범위수·극택통서·경국대전은 임문한다 .

》《원천강배송한다.서자평·응천가·범위수·경국대전임문함은 원전에 보였다.시용통서로 신증 임문하고 지리학 4·명과학의 1서를 지금은 폐지한다 .

》《협길통의로 신증, 임문하고 서자평·응천가·범위수·시용통서를 지금은 폐지한다.

 

이상은대전회통예전 제과 음양과초시의 명리학[명과학] 강서 부분이다. 여기서 경국대전의 조문을,속대전의 조문을, 대전회통의 조문을 말한다. 따라서 경국대전1485[성종 16],속대전1746[영조 22]대전회통1865[고종 2]에 각각 시행되므로 시대의 변천을 알 수 있다.협길통의1795[정조 19]에 간행되었기 때문에 보다 구체적인 시대적 변천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적어도 1746년부터는극택통서대신에시용통서로 바뀌고, 1795년부터는 다시시용통서대신에협길통의로 바뀌고 있다. 동시에 적어도 1795년부터는 서자평·응천가·범위수·시용통서등이 제외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 원천강·서자평·응천가·범위수등은 전통명리학 담당 관리가 꼭 배워야 할 과정인 셈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18세기 후반부터 변동이 생긴 것이다.

위의 5 과목이 전통명리학 담당 관리가 익혀야 할 심화 과정이라면 다음 13과목은 전통명리학 학생이 익혀야 할 기본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명과학은 원천강은 배강한다. 삼신통재·대정수·범위수·6·5행정기·극택통서·자미수·응천가·서자평·현여자평·난대묘선·성명총화, 이상은 임문한다

 

이상은 전통명리학 학생을 뽑는 취재시험 과목이다. 이 과목은 조선이 멸망할 때까지 변화하지 않는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명리학 과목은 겹치는 부분을 감안한다면 10종이다.

 

그런데 1430[세종 12]에 의하면, 이들 10종이 결정되기 이전의 과목들이 보인다.

 

성명복과·주역점·6임점·성명서·대정3천수·범위수·자미수·황극수·원천강5행정기·전정역수·응천가·오총귀·삼신통재》《난강망·관매수·해저안·벽옥경·난대묘선·금연신서·삼거일람

이들 과목은 세종실록 12 318(무오)에 상정소에서 여러 학의 취재에 있어 경서와 여러 기예의 수목에 대하여 아뢴 결과이다.

 

이상의 20 과목과 앞의 10 과목의 비교는 조선 시대 명리학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1군 과목 12

성명복과·주역점·6임점·성명서·대정3천수·황극수·난강망·관매수·해저안·벽옥경·금연신서·삼거일람

2군 과목 3

범위수·원천강·응천가

3군 과목 4

극택통서·서자평·현여자평·성명총화

 

1군은 조선 시대의 명리학 과목으로 채택되지 못하고 사라진 12종이다. 가운데6임점6대정3천수대정수를 동일 과목으로 본다면 10종이 되는 셈이다. 특히궁통보감의 원전으로 알려진난강망이나 사고전서 본(1781)에 수록된금연신서등이 왜 채택되지 않았는지 알 수 없다.

2군은 담당 관리의 필수 과목이다. 그런데 이들 3종에 서자평이 새로 편입된 것을 알 수 있다.

44종은 세종 12년에 전혀 보이지 않던 종류이다. 이 가운데극택통서명과학뿐만 아니라 지리학에서도 시험과목으로 채택되는 것을 알 수 있다.서자평현여자평과 같이 자평류가 2종이나 채택되는 지 알 수 없다. 영조 8210[무술]에 의하면,격해자평을 중국에서 구입해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자평류가 18세기 말엽에는 퇴출되는지 더욱 알 수 없다. 그런데 1930년대에 오면 서자평일시법이 유행하는 것은 무엇인지 설명하지 못하겠다. 전통 명리학의 비밀이 이 부근에 있다고 여겨진다. 또 하나 주목되는 과목이 요 나라 사람인 야율순성명총화의 등장이다. 이 책은 고려국사부가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야율순은 고려 국사에서 이 성명서를 전수를 받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이도 규명해야 할 일의 하나이다.

 

서유구[1746~1845]가 지은 임원16누판고가 있다. 이들은 규장각 밖에 있는 경외누판을 정리한 바 있다. 여기 술수류가운데 명리학과 관련된 문헌으로 소강절심역매화수1,원천강삼성삼명지남10,응천가4,자평삼명통변연원2,범위수2,천기대요2,선택기요3권이 소개되어 있다. 이보다 앞서서 어정’[임금이 정함]류에협길통의22권이 나와 있다.

 

지금까지 조선시대 명과학에 관한 문헌정보를 살펴본 셈이다.

그렇다면 실제는 어떠하였을까? 조선이 망할 때까지 유지되었던 남아 있던 명리학 자료가 있다. 궁내부 규장각 도서과에서 1909년에 발행한 제실도서목록이 그것이다. 그 가운데 자부의 술수류는 다음과 같다.

 

천지만물조화론, 황극경세서동사보편, 관규집요, 요해성종, 협기변방서, 호순신, 대통력전신법식, 계몽전의, 역도, 황극일원도, 협길통의, 현감, 추보속해, 세초류휘, 선택기요, 선택요략, 천문유초, 재이고, 가전명강절선생심역괘, 천명도설, 해경세초해, 상주6임단경비결, 6임과경집, 명산론, 오행정기

 

이들 외에도 천문산법류로 분류되는 문헌정보를 보이면 다음과 같다. 오늘날처럼 천문대라는 전문기관의 역법이 없던 시대의 이러한 정보는 전혀 다른 의미가 있다. 명리학 자체가 천문학을 보조과학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天東象緯考 4책과 82종류[6, 0] 歷代象緯考 6[6, 0] 象緯考 6[6, 0] 歷代曆象考成 8[6, 0], 諸家曆象集 4[6, 0], 五緯曆指 9[7, 0] 五緯表 10[7, 0], 國朝曆象考 2[7, 0], 新制靈臺儀象志 4[7, 0], 儀象志 7[7,0] 七政細艸1[7,0] 時憲紀要2[7,0] 칠정산내편 칠정산외편 시헌칠정백중력 대통칠정력 歷事明原 칠정백중력 서양신법역서 신법역서 일식가령 월식가령 일월식가령 보천가 백중력 천세력 만세력 삼원교회 의기집설 천원옥역상이부 성경 중수대명력 漏籌통의 新法

 

이들 가운데 특히역사명원협길통의의 배경이 되는 지식에 속하므로 확인이 요청되는 부분이다. 이외에도 洪範口義 1[서가 3 0] 康節先生皇極經世書 [서가 13, 0] 歷代妖星錄 1[16, 0 ] 문헌비고 120[17, 24] 동국문헌비고 40[18, 0] 동국문헌 5[19, 0] 경국대전 4[19, 0] 등이 있다.

 

2절 전통명릭의 3대 저서

 

1원천강오성삼명지남

 

1) 서지

 

저작물 원천강의 줄이지 않은 이름은원천강오성삼명지남이다. 현재 이 책은 규장각과 장서각에 각각 1종씩 2종이 있다. 규장각본은 102책이고 장서각본은 142책이다.

규장각본은 조선총독부도서관이 1928510(도서등록번호 고 2759’)로 등록한 것을 대한민국 국립중앙도서관이 1993123(고서 88673, 88674)에 새로 등록하고 있다. 이 책은 예각필서체자로 방윤서록에서 간행한 것이다. 네 변이 두 선으로 둘러쳐지고 매장이 1020자이나 작은 글자는 두 줄이다. 위 아래에서 안으로 향하는 네 잎의 그림 무늬 흑어미가 있고 판심의 제목이 원천강이다.

사변 쌍변, 19.8 x 13.1 cm, 유계, 917, 소자 쌍행, 상하내향 사판화문흑어미 25 x 17.1 cm.

사주 쌍변 반곽 20.7 ×13.9 cm, 유계, 1017, 내향 화문어미 29.6 ×17.7 cm.

 

인용된 위의 2본은 규장각본과 다른 출판물임을 알 수 있다.원천강은 조선 시대 내내 변화가 없이 명과학 관리채용 시험 제1과목이었기 때문에 여러 차례 간행될 공산이 크다. 이러한 실체를 확인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들 본은 10권이며 방윤서록의 목판본으로 그 책의 내용이 같다.

그런데 장서각본은 142책으로 내용이 보강되어 있고 훈련도감자판이라는 점에서 규장각본류와는 구별된다. 이 본은 광해군~인조 사이 1609년부터 1648년 사이에 간행되었고 표제와 판심제가 모두 원천강이다. 책에는 장서인으로 안정복(1712~1797)과 이지질의 장서인이 찍혀 있다.

중국에는 4책인 본이 있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원천강102[·]이다. 상책은 발단류[1], 귀신류[2], 합류, 역마류, 학당학관류[이상 권3], 인류[4], 재고류, 관살류[이상 권5]이고 하책은 공망류[6], 시단류[7], 관귀류[8], 행운류[9], 명격류[10]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2 저자

 

원천강은 의문투성이인 사람이다. 조규문이 박사학위[2009 대전대학교 대학원] 논문[천강 원수성의 명리사상에 관한 연구]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581년 전후에 태어나 647년 이전에 죽은 사람으로 되어 있다.

원천강 인물에 관한 사료는 우리나라의 경우경국대전주해,서운관지가 있고 중국의 경우구당서중국인명대사전등이다. 하여튼 원천강은구당서의 열전에 나오는 실제 인물임에 틀림이 없다. 이 사료들은 관리로서의 원천강이 살던 시기를 수[581~619]와 당 고조[618~626], 태종[626~649] 등으로 연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원천강은 촉군 성도 사람이다. 아버지 기는 양주의 사창이었고 할아버지 숭은 []주 나라[556~581]에서 조정에서 건위를 지냈으며 포양과 포강 두 고을의 수령과 거기장군을 역임하였다. 증조 달은 양조장에서 강주와 황주 두 주의 자사였고 주 조정에서 천수와 회인 두 고을의 수령을 지냈다.

천강은 어려서 고아가 되어 가난했으나 도예를 좋아했으며 상술에 정통하였다. 당 무덕 연간[618~626]에 화정령이 되었고 정관 6[632]에 벼슬의 임기가 다 되어 서울로 돌아왔다. 태종[제위 626~649]이 불러서 보고 천강에게 일러 말하길 파촉에는 옛날에 엄군평이 있었는데 짐은 지금 네가 있다. 스스로 생각해보면 어떠한가?’ 대답하여 말하길 그 사람은 때를 만나지 못했고 저는 성군을 만났으니 제가 마땅히 낫습니다.’

 

이상은 조규문이백부총서집성원천강외전을 번역한 것을 논문에서 가져온 것이다. ‘[ ]’는 연구자가 보강한 부분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원천강이원천강오명삼명지남의 원천강과 일치하는가이다. 다르다는 것이 연구자의 생각이다.

중국인명대사전에 의하면, 원천강은 명리학 전공자가 아니라 풍수학 전공자이다. ‘풍감을 잘 했다고 했는데 풍감이 바로 풍수인 것이다. 동시에 6임과 관상에도 능한 사람이었다.

 

혹시 뒷사람이 거짓으로 꾸민 것이라는 말하기도 한다.

이상으로 논의한 것은 사료를 통하여 원천강을 살펴본 결과이다. 그런데 연구자가원천강오성삼명지남의 원천강과구당서열전의 원천강이 다르다는 것은 명리학적 근거에 의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저서 원천강은 몽골[1206~1259]과 원[1260~1370] 시기에 등장하던 오성삼명지남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다음 항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3 내용과 의의

 

저서 원천강을 논의하려면 먼저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 첫째, 조선 시대 내내 명리학의 제1 필수과목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명리학에서는 거의 공백 상태로 남겨 두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둘째, 한국명리학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그동안 왜 저서 원천강이 존재하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셋째, 저서 원천강은 현대명리학 즉 소위 자평학으로 각광을 받는 ‘6론의 모태를 담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런 세 가지 항목을 풀지 않으면 원천강 접근이 어려우리라고 생각된다.

최근 학위 논문을 통하여 원천강은 조명을 받고 있는 셈이다. 조규문은 원천강의 본격적인 연구를 했고 〇〇>는 명리학의 출발점으로 삼고자 했다. 그러나 아직은 고찰이 필요한 단계이지 판단을 내려서는 아니된다고 여겨진다.

첫째, 중국의 고전명리학의 문헌들은 거의 영락대전과 사고전서에 수록되면서 공식적인 모습을 띤다. 그런데 여기에원천강오성삼명지남은 빠져 있다. 다만 사고전서본[1781] 만민영[1523~?]성학대성에 등장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성학집성23에는 부록으로 지남정귀격으로 원천강10 명격류을 모두 빼지 않고 그대로 수록하고 있다.

 

천지합덕, 군신경회, 일기위근, 양간불잡, 삼합취집, 사주순금, 오행구족, 육위상승, 간진일자, 지신일자, 봉황지, 봉황간, 봉황지, 인종포승, 신장살몰, 마록교치, 간록낙마, 집복발복, 5자연주, 6자연주

 

여기서 만민영은 원천강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지남정귀격을 붙인다는 것이다. ‘정귀격지남으로 보고 부록으로 달았다는 것은 여러 가지 시사점이 있다. 저서 원천강에 등장하는 명격류정귀격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오성삼명의 지남으로 보았다는 뜻이 된다. 이를 확대 해석한다면원천강의 권7 ‘시단류에 등장하는 시결 200여수도 모두 지남이라는 시각이 된다.

이 뿐이 아니다.성학대성25에는원천강53명지남9 ‘조미론이 그대로 수록되어 있다. 만민영은 저서 원천강의 조각들을 핵심적인 부분에서 확보했다는 의미가 된다. 저서 원천강의 제목이 ‘5인 것은 바로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 할 것이다.

둘째 그동안 왜 한국명리학계에서 저서 원천강이 논의되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이는 한국의 현대명리학이 외국[중국 또는 일본을 통한 중국]과 연결되면서 고전명리학과 연계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연구자는 2003년 강의노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저서 원천강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조선시대 명리학 제1 필수 과목이었다. 이미 앞에서 논의한 바대로 특수한 위치를 차지하는 그야말로 본격적인 명리학 저서였다. 그런데 현장에서 활동하는 대가들에게 물어보았더니 책자의 이름인가, 인물의 이름인가, 심지어는 전혀 모른다고 했다. 그 때의 '충격'은 컸다. 오늘 이러한 저서를 쓰고자 했던 것은 바로 그 충격의 산물이다. 한국명리학의 역사를 써야겠구나 생각했다.

당시 대학원을 다니던 학생 가운데 조규문 선생이 있었다. 2003년을 명리학 발견의 해라고 경탄했다. 그러더니 2009년 대전대학교 대학원에서 천강 원수성의 명리사상 연구라는 논문을 써서 한국명리학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또 다른 글에서 원천강을 명리학의 태두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와 같이 원천강 연구를 강조하는 것은 그저 개별적인 단순한 연구가 아니라 한국명리학의 고전과 현대를 잇는 역사적 의미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더욱 많은 역사적 맥락을 통하여 한국현대명리학을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셋째,원천강오성삼명지남이 한국명리학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의의를 살피는 순서이다.구당서열전에 등장하는 원천강과원천강오성삼명지남의 원천강이 다르다는 점을 제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저서 원천강은 1) 체계적이고 논리화된 명리학 문헌이라는 점 2) ‘6이 등장한다는 점 3) 한국 역사상의 후대 영향이 지대했다는 점 등의 특징이 있다.

구당서에 등장하는 원천강이 581년 전후에 출생하여 649년 이후에 죽었다면, 이허중은 762년에 태어나 813년에 죽었다. 원천강과 이허중은 150여년의 차이가 난다. 그러면 이허중[이허중명서]은 원천강의 영향을 받아야 한다. 더욱이 두 사람이 모두 당 나라 사람이므로 전승 관계가 보다 수월했을 것이다.

그런데이허중명서에는원천강오성삼명지남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구태어 영향 관계라면 이허중의 태···시론이나 원천강의 년····태의 ‘5명론이 될 것이다. 저서 원천강에는 년월일시의 주관을 년은 15, 월은 30, 일은 45일을, 시는 늙어죽을 때까지라고 했다. 주관이 년은 자신이 되고 월을 형제가 되고 일은 처첩이 되고 시는 자손이 되고 태는 부모가 된다고 되어 있다.

25명에 대한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갑자년 4월 무신일인시생의 5명을 꾸미는 과정이 있다. 년은 갑자이고, 일은 무신이니 그대로 간지를 활용하면 된다. 다만 월··태가 문제가 된다. 월은 갑기둔기병인을 적용하면 4월에 이르러 기사월이 된다. 시는 무계둔기임자을 적용하여 인[+호랑이 3 ·]에 이르러 갑인시가 된다. 이렇게 4주가 완성된다. 태는 남녀 불문하고 본 생월 앞 4[간지의 위치를 말함]로 산정하니 경신이 된다.

그러므로 5명은 갑자년금, 기사월목, 무신일토, 갑인수, 경신태목이 된다.

이와 같이 이허중과 원천강의 처음부터 접근 방식이 다르다. 구당서의 열전의 원천강과 원천강오성삼명지남의 원천강이 다르다는 점이 이것이다.

더욱 분명한 것은 저술 원천강의 권1 ‘발단류를 보면 그 체계가 오늘날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60화갑자, 10간순, 10간역, 10간소속음양, 10간소속5, 10간천원화운, 12, 12지소속음양, 1지소속5, 12생초, 12월건, 12, 정인시, 정태양출몰, 24, 둔월례, 둔시례, 5행납음, 5행상생, 5행상극, [상생과 상극에 대한][노래], 5행발용, 장결[손바닥을 통하여 비결을 암기하는 방식], 4, 4, 4임관, 4, 4, 4, 5행자생자왕례, 5행자패자절례, 5행불패불절례, 수화불혐사절론, 토불절이론

 

이 가운데 12’, ‘정인시’, ‘정태양출몰등은 당시의 역법 수준으로 생각할 수 없는 수준인 것이다. ‘정인시의 경우는자평삼명통변지남연해자평에 그대로 활용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당나라 사람 원천강과 조선시대 명리학 저자 원천강은 동일한 인물이 될 수 없다.

원천강오성삼명지남에서 주목되는 것이 소위 ‘6신론의 초창기적 모습을 한다는 점이다. 2의 뒷부분에 식신류, 4에는 [도장]재고류등이 등장한다.연해자평에는 극아자[나를 극하는 것]는 정관·편관이 되고 생아자[나를 낳는 것]는 정인·편인이 되며 아극자[내가 극하는 것]는 정재·편재가 되고 아생자[내가 낳는 것]는 상관·식신이 되고 비견자[나와 어께를 나란히 하는 것]는 겁재·패재가 된다.원천강오성지남의 경우 식신류는 아생자로 [내가 낳는 것] 식신을, ‘[도장]가 생아자[나를 낳는 것]로 정인·편인을, ‘재고류가 아극자[내가 극하는 것]로 정재·편재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식신류를 예시로 들어본다. 식신류는 10간식신과 비결 관귀식신, 연주식신, 녹마식신, 식신학당, 식신학관 등이 있다. 10간식신은 10간을 취급함에 있어서 1[자리]의 천간을 건너뛰는 것이다. 즉 갑[+1]의 식신은 병[+3]이 된다. 을식정 병식무 .... 임식갑 계식을 등과 같다. 관귀식신은 갑[+1]이 신[-8]을 쓰면 이 되는데 신의 식신은 계[-10]가 된다. 갑생인은 신을 보는 것을 쓰지 않지만 다만 계를 보고 이를 고칠 수 있다. 연주식신은 갑의 식신이 병이고 병의 식신 무[+5]이고 무의 식신이 경[+7]이고 경의 식신의 임[+9]이다. ····태가 서로 순행할 때 위에서 아래를 식신하는 것이다. 녹마식신은 갑신·갑자·갑진 생이 병·인을 보고 경인·경오·경술 생이 임신을 보는 것이다. 단지 이들 6[자리]가 이것이니 크게 귀하고 현달하게 된다. 식신학당은 갑의 식신이 병이면 병인을 얻는것이고, 병의 식신이 무이면 무신을 얻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을 말한다. 식신학관은 을의 식신이 정이면 정기를 얻는 것이고 정의 식신이 사이면 사해를 얻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을 말한다.

4 ‘[도장]가운데 ‘10간 인수가 등장한다. ‘생아[나를 낳는 것]자는 양[+]이 음[-]을 버린 것을 취하고 음[-]을 취하고 양[+] [자리]를 구한다는 설명은원천강오성삼명지남자평삼명통변연원과 동일하다. 이러한 동일한 명리학적 이론은천기대요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작은 결론을 내리면,원천강오성삼명지남자평삼명통변연원을 도입하기 위한 단계처럼 보인다.원천강오성삼명지남의 원천강과구당서에 등장하는 원천강과 다르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점이다. 이허중과 원천강은 명리학적 이론에서 전혀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사회로 올수록 원천강의 영향을 널리 퍼져 나간다. 각종 고대소설에 등장하고 오늘날까지 국한문 표기로 원천강 문서가 전하고 있다. 적지 않은 자료들이 후일의 연구를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참고문헌]

원천강53명지남,경국대전,경국대전주해,속대전,대전회통,서운관지,성호사설, 한국서지,증보 문헌비고》《삼명통회》《성학대성

 

2자평3명통변연원

 

1) 서지

중앙도서관 소장의 자평삼명통변연원은 상·하권 2책이다. 표제가자평연원이고 동재 서대승의 서[머리말]와 목차가 나온다. 그런데 눈에 띠는 것은 전당동재 서대승서는 기록이다. 왜 발문을 쓴 전당자 전지옹전당이 동일한가이다. 후일의 연구 성과를 기다릴 뿐이다.

상권은 천간통변도와 지지조화도의 도표가 있고, 기법, 천덕, 월덕, 정인시가, 10악대패일 등의 항목과 정진론’, ‘희기편’, ‘계선편등 비교적 긴 논의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간명의 형식을 세우는 입식을 다음과 같이 전개한다.

정관, 편관, 정재, 편재, 잡기, 월귀, 공록·공귀, 금신, 일인·양인, 인수, 상관, 월덕, 괴강, 시묘

하권은 18 격국을 논하고 있다.

 

정관격, 잡기재관격, 월상편관격, 시편재격, 시상일위귀격, 비천록마격, 도충격, 을사서귀격, 합록격, 자요사격, 축요사격, 임기룡배격, 정란차격, 귀록격, 육음조양격, 형합격, 공록공귀격, 인수격, 잡기인수격

 

맨 뒤에는 전당자 전지옹이 발문을 쓰고 있다.

 

한국명리학의 역사에서 서자평은 비교적 행적이 분명한 문헌이다.

1430[세종 12]에는서자평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1485[성종16 경국대전]에는현여자평과 함께 등장하여 과시와 취재에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1797[정조 21 ]에는 시강의 과목에서 제외된다.

1797[정조 21] 서자평과 범위수 운명을 추구하는 방서이므로, 본디 길일을 기리는 학업에 관계되지 않으니 이제부터 새로 간행된 협길통의원천강두 책으로 시강하면 참으로 합당하겠습니다.’

이로 보아 조선 후기에 와서 명리학의 입지가 약화된 것으로 풀이된다.

1865[고종 2 대전회통]에는 폐지한다고 되어 있다.

이러한 등장과 퇴장의 관계를 밝힌다면, 서자평 연구의 핵심이 될 것이다.

 

2) 저자

 

전당동재 서대승

서대승은 남송[1127~1279] 사람이다. 태어나고 죽은 시기를 모르지만,자평삼명통변연원의 자서를 쓴 때가 보우 1253년부터 12571015일 보름날이다.중국인명대사전에도 동재 서대승의 항목은 없다.

경국대전주해에는 서자평이 송나라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이익[1681~1763] 성호사설은 서자평을 서거이로 보고 있다. 성호는 오대 사람이라고 하면서 진도남 즉 진단과 화산에서 은거했다고도 했다. 그런데 진도남는 송 나라 사람인 것이다.

모리스 꾸랑[1894~1896]한국서지에서는 오대의 서거이나 송대의 서언승으로 보고 있다.

 

연구자는 서대승이 바로 소위 서자평이라고 생각한다. 첫장에 전당동재 서대승 신편으로 보아 발문을 쓴 전당자 전지옹도 동일한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서자평은중국인명대사전에서도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혹은 말하기를 오대 사람이라 한다. 별에 관한 학문에 정통하였고 낙록자의삼명소식부를 주석하였다. 후세에 술사의 조종이 되었다. 이제 8자로 추명하는 것을 이르니 자평이 되었다. 그로 인하여 그 이름이 붙었다.

 

이 서자평에 대한 서술은 서자평의 존재를 인정하는 못하는 쪽으로 되어 있다. ‘혹은 말하기를부터 그렇다. 경국대전 주해, 성호사설,한국서지등에서와 같이 혹은이 따라다닌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중국의 명리학의 역사에서 저술자가 제대로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보기를 들면 수도 없지만삼명통회가 대표적인 아닌가 싶다. ‘육오산인만민영을 섞어서 쓰기 때문에 혼란스럽다. 그러므로 사고전서본(1779)삼명통회제요에는 지은이를 모른다고 하고 있다. ‘육오인지 만민영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만민영으로 정리되었다. 술사 혹은 방사들은 즐겨서 이름을 감추는 일은 흔한 일이기 때문에 빚어지는 결과라 할 것이다.

이들 술사 혹은 방사들이 책을 짓고도 하늘에 내린 것이라 하고 싶어 한다. 이러한 전통은 한 나라[BC 206~ AD 220]의 참위설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는 신비성과 권위를 보장받으려는 심리라고 보아 좋을 것이다.옥추경은 정일교 39천사장사성이 1333년에 지은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은 몇 차에 걸쳐 하늘이 내린 책 강서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이 말씀한 것이라는 것이다.

자평의 법은 배우기는 쉽지만 정교하기는 어렵다.

 

여기서 자평은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고유 명사의 자평과 일반 명사의 자평이 그것이다. 전자인 경우는 서자평을 의미하는 것이고 후자의 경우는 자평, 즉 자[]로 하는 평으로 추명학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서자평을 고유명사로 보느냐 일반 명사로 보느냐에 따라 지은이가 달라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자기들이 전공하는 학문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곧잘 역사의 유구성을 강조하기 쉽다. 특히 명리학에서 그런 경우가 적지 않다. 연대기를 자꾸 윗대로 끌어올리려고 한다. 역시 신비성과 권위를 내세우고자 하는 심리가 작용한 것이라 여겨진다.

원천강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논의한 대로원천강오성삼명지남의 명리학적 논리는 150여년 후대의 이허중[762~813]과 관련시키기가 적절하지 않다. 서자평을 고유 명사로 보고 오대 사람이고 성[별자리]학에 정통한 사람이라면 6신의 완성자로 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대승이 바로 서자평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서대승이 만난 고수는 []로 하는 평의 대가로 풀이된다. 북송[960~1127]의 상수학과를 고려하지 않으면 남송[1127~1279]의 학문이 진행될 수 없기 때문이다.

명리학이 제도권 학문으로 성장하려면 문헌의 고증을 전제로 하여야 한다. 문헌의 실체를 밝히고 술의 깊이로 승부를 걸어야지 문헌 자체까지 끌고 들어가면 통념화하기가 결코 어렵다고 여겨진다.

 

3) 내용과 의의

 

자평3명통변연원자평이 3명에 대한 통변의 연원을 살핀 것이라는 의미이다.

 

3명론의 성립과 완성

 

자평이 말하는 ‘3정진론, ‘희기편’, ‘계선편등과 발문에섞여서 그 내용을 드러내고 있다. 아직 모색 단계라고 보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연해자평에서는, 독립된 항목으로 설정하고 있다. 학설이 완결되었음을 의미한다. 다만 책 제목이 ‘3인데 내용은 ‘3으로 설명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여기서 ‘3은 천원, 지원, 인원을 의미한다.

 

가령 갑자이면 갑목으로 천원을 삼고 자로 지원을 삼으며 자 가운데 감추어진 계수로 인원을 삼는다.

 

원래 ‘3자평삼명통변연원의 발문에 요약되어 있고 계선편에 비교적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전당자 전지옹의 발문에 다음과 같이 요약되어 있다.

 

명을 받고 태어난다는 것은 반드시 일[날짜]와 월[]이 주가 된다. [시간]을 빌려서 천원에 모습이 되니 10 천간을 삼고 지원에 배열이 되니 12 지지로 되며 납음에 깔아서 5행이 된다. 이를 3명의 책이라 한다.

 

자평3명통변연원3명론 즉 천원=10 천간’, ‘지원=12 지지’, ‘납음=5의 등식이다.

그런데연해자평에 와서 납음=5인원=지장간으로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자평의 3명론이 자평3명통변연원에서 제기하여 연해자평에서 완성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통변론의 연원

 

통변이란 소위 ‘6[가족 관계]’, ‘10[용신 관계]’, ‘10[별과 관련]’ 등을 말한다. 자평 이전에도 통변론이 있었는데, 아직 정제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연원을 밝히고자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미원천강53명지남을 다루는 과정에서 시사한 바 있다. ‘식신류’, ‘인류’, ‘재고류등의 초창기적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원천강류의 통변론이 아직 정제되지 못한 상태였던 것이다.

그래서자평3명통변연원에서 통변을 정제하고자 했다. 그래서 이 책의 첫머리로 천간통변도지지조화도로 시작한 것은 이 때문이다. ‘천간통변도생일로 보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일생 견

 

 

 

 

 

 

직간

상관

식신

정재

편재

정관

D

편인

B

C

식신

상관

편재

정재

D

정관

정인

C

A

정재

편재

정관

D

정인

편인

B

C

상관

식신

편재

정재

D

정관

편인

정인

C

A

식신

상관

정관

D

정인

편인

B

C

식신

정재

편재

D

정관

편인

정인

C

A

상관

편재

정재

정인

편인

B

C

상관

식신

편재

정관

D

편인

정인

C

A

식신

상관

정재

D

정관

B

C

상관

식신

정재

편재

정관

D

정인

편인

C

A

식신

상관

편재

정재

D

정관

편인

정인

천간통변도

오늘날과 용어상 차이가 다소 있다. C는 비견, A는 패재양인, B는 패재 , D는 칠살 등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겁재인 경우 갑견을, 병견정, 무견기, 경견신, 임견계 등 5종이 패재양인이 되고 을견갑, 정견병, 기견무, 신견경, 계견인 등 5종이 패재가 된다. ‘7이란 용어는 보이지 않는다.

통변론의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 것이 간명 입식혹은 간명 입세이다. ‘입식자평3명통변연원에서 입세연해자평에서 사용한 말이다. 전자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간명하는지 설명이 없지만 후자에 오면 그 방법을 제시하여 보여준다.

 

간명입세는 5행제강이다. 간명은 8자를 배열하는데 일간위주로 한다. 년을 취하여 뿌리가 되고 조상이 준 재산을 삼아 집안의 성하고 쇠함을 안다. 월을 취하여 싹이 되며 부모가 된다. 즉 친부모의 음덕이 있는지 없는지를 안다. 일간은 자기의 있음이 되고 일지는 아내와 첩이 되니, 아내와 첩의 현숙함을 안다. 시는 꽃과 열매가 되고 자식이 되니 자손 둠을 안다.

 

일간일지를 분간하여 논의한 것은 이 때부터이다. 말하자면 통변의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꽃과 열매로 인식하는 등의 다소의 차이가 있으니 아직 이 설이 완비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하여튼 통변의 연원을 밝히려는 서대승의 노력은 이전의 명리학과 구별되는 것임에 틀림없다. 후대의 명리학서인자평진전과 비교하여 그 과정을 깊이 통찰할 필요가 요구된다.

일위주론일간위주론의 구분

 

자평삼명통변연원연해자평일위주론일간위주론을 구별하여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날짜]을 위주로 하여 8자를 찾아 활용하니 먼저 제강[월령]의 무겁고 가벼움을 관찰하고 다음에는 시[시간]와 일[날짜]의 깊고 얕음을 세밀히 살핀다. 전적으로 재관이 원래 있는지와 없는지를 보아야 한다.

 

일주를 위주로 하여 8자를 보고자 할 때 먼저 제강의 무겁고 가벼움을 보고 다음에는 시[시간]와 일[날짜]의 깊고 얕음을 상세히 살핀다. 전적으로 재관이 있는지 없는지를 보아야 한다. 처음부터 모든 영역에 서자평=일주론을 적용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평삼명통변연원계선편에는 일주론을 제한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귀하고 천함을 알고자 할 때는 제강[월령]’으로 보아야 하고 길함과 흉함을 알고자 할 때는 일위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서자평의 생각은연해자평에 오면 보다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귀하고 천함을 알고자 할 때는 먼저 월령 제강을 본다자평삼명통변연원연해자평에 오면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설명을 한다.

 

월령으로 8자의 요령을 본다면 다시 절기의 깊고 얕음으로 알고 재화를 알아야 한다. 가령 인 가운데 간토가 있으면 여기가 7일 반이고 병화가 기생하면 또 7일 반이며 갑목이 바르게 합하게 되면 같이 15일이 된다. 3자가 어떤 것이 화가 될지 복이 될지 활용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정관·정인·식신을 본다면 길하고 상관과 편인은 흉할 것이다.

 

다음에는 귀천을 알고자 하면 먼저 월령의 제강을 보고 다음으로 길흉을 판단하고자 하면 오로지 일간을 주된 본위로 하여 3원으로 격국을 만들면 사주는 재관을 보고 기뻐할 것이다.’는 부분은 다음과 같이 구체적인 설명을 곁들이고 있다.

천간이 천원이 되고 지지가 지원이 되며 지지 가운데 소장되어 인원이 된다. 년월일시가 4주가 되니 오로지 생일의 간지로 하되 43원을 배합하여 격국을 완성한다면 재관이 좋아할 것이다.

 

이상의 논의를 정리하면 서자평의 일주론은 귀천=월령’, ‘길흉=일주라는 특별한 하나의 용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주로 4주를 만든다는 것은 우월령으로 하면 4주가 되지 않는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일간위주론자평3명통변연원에는 등장하지 않는다.연해자평‘6친총론에 등장한다. 6친은 부모, 형제, 형제, 아내, 자손을 말한다.

 

일간위주을 활용한다. 정인은 어머니이고 편인은 서모 및 조부이다. 편재는 아버지이고 어머니의 남편별이다. 역시 첩이 된다. 정재는 아내가 되고 편재는 첩이 되고 부모가 된다. 비견은 형제자매가 된다.

 

이상의 6친론은 조부, 아버지, 어머니, 편모, 아내, , 형제와 자매 이외에도 남자, 여자, 남자 자손, 여자 자손, 할머니 등을 다루고 있다. 중국의 가족 관계를 드러내는 대목이라 할 것이다.

하여튼 이러한 서대승의 ‘6친론은 후대 간지로 교체되면서 다시 많은 발전을 하게 된다. 다만 이러한 깊이 있는 연구는 여기서 논외이므로 취급하지 않지만 앞으로 과제로 여겨진다.

 

〇《자평3명통변연원연해자평의 비교

 

자평3명통변연원연해자평으로 가는 길목의 원전을 제시한다. 전자에서 미흡한 점을 보강하는 것이 후자이다. 특히 상해정진론’, ‘희기론’, ‘계선편자평3명통변연원의 경우보다연해자평의 확대가 2~3배가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없던 항이 보이기도 하지만, 골격 면에서 변화는 없다. 이들 두 원전의 섬세한 비교가 요청되는 대목이다.

하여튼 조선시대의자평3명통변연원은 소위 서자평 명리학의 뿌리인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된다.

 

[참고 문헌]

 

자평3명통변연원,경국대전,경국대전주해,속대전,대전회통,서운관지,성호사설, 한국서지,증보 문헌비고》《관판 연해자평》《연해자평정해[번역본]

 

3 협길통의

 

서지

 

협길통의는 총2210책이다. 본원[1~2], 의례[3~7] 공규[8~9] 용사[10~11] 의기[12] 입성[13~14] 이용[15~18], 총론[19] 변위[20] 부록[21~22] 등이다.

본원은 총론에 속하므로 이를 소개할 필요가 있다.

 

하도/ 낙서/ 선천8/ 후천8/ 갑력/ 1012/ 4/ 6/ 12월 벽괘/ 1228수성상/ 28수배일/ 5/ 5행용사/ 5행생왕/ 간지5/ 3/ 6/ 5서둔과 5호둔 / 5합화기/ 납음/ 납음5행 응선천도/ 납음5행 응후천도 / 납음간지 기수합5/ 55/ 납갑/ 납갑 직도/ 납갑 원도/ 납갑납12지도

 

이상은 본원 1’로 권1상수학의 기본적인 지식이다. 이 지식에 의하여 18세기 이후 명리학이 진행된다는 사실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본원 2’는 권2로 풍수학 관련 지식이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 초간본이 보관되어 있다. 목판본으로 운관[관상감]의 발행으로 사주쌍변, 반곽 21.5 x 15.4 cm, 1020자 주 쌍행, 상백어미; 31.7 x 20.5 cm이다.

 

저자

 

임금[정조]의 명에 의하여 관상감 제조 자헌대부 예조판서 겸 지경연사인 민종현閔鍾顯이 교찬집을 맡았고, 정헌대부 호조판서 겸 지경연사인 심이지沈頤之와 관상감 제조 자헌대부 이조판서 겸 지경연 의금부 춘추관사동지 성균관사 규장각검직 직제학인 서유방徐有防[1741~1798]이 교정을, 통훈대부 행 평구도 찰방인 지일빈池日賓, 통훈대부 전행 와서 별제인 지경철池景喆, 통훈대부 전행 명과학 겸교수인 지경필池景泌 등이 휘편을, 지일빈池日賓 등이 감인을 맡았다.

서문은 서유방이 썼다.홍재전서에도 정조가 쓴 서문이 보인다.

 

저서의 의의

 

협길통의는 두 저서의 제목에서 따온 합성어이다. 즉 매곡성의협기변방서과 위감의상길통서길통을 딴 것이다. 거기에 를 붙여서 완성된 단어가 되었던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은 1795년 정조 17년에 나라에서 내린 것이기도 한다.

 

음양가는 곽박郭璞[276~324]현경이후로 무려 수백 가에 이른다. 그러나 오직 조진규曹震圭역사명원과 이광지李光地성력고원만이 천리를 근거로 하여 상생과 상극을 발휘했으니 참으로 선택의 좋은 방법이다. 하락의 변화를 따라서 술가의 잘못을 증정한 것으로 매곡성梅瑴成협기변방서가 있다. 또한 여러 가의의 그림과 해설을 모두 모으고 각 법의 단점과 장점을 절충한 책으로 위감魏鑑상길통서가 있다. 내가 운관에 지시하여협기변방서상길통서두 책을 참고하여 합하되 그 가운데 번잡한 것은 삭제하고 잘못된 것은 바로 잡아서 본원, 의례, 공규, 용사, 의기, 입성, 이용, 총론, 변위, 부록의 10개 항목으로 편집하고 협길통의라 명명하였다.’

 

이상은홍재전서18 183 군서표기 5에 수록된 정조의협길통의서문이다.협길통의가 조진규의역사명원과 이광지의성력고원을 바탕으로 하는 선택서라는 것을 알 것이다. 여기서 선택이란 마땅함꺼림을 의미한다.

예나 지금이나 명리학은 적중률에 매달리고 있다. 적중률안에는 진솔하고 따뜻한 인간애보다는 경제적인 사고가 깔려 있다. 한 번 깊게 생각해야 한다. 결국 인간의 일이란 모두 마땅한 것인가?’ 혹은 꺼리는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인 것이기 때문이다.

 

서운관지선택에는 정조가 1793[17] 서운관 관리들에게협길통의를 만들어야 하는지 설명한 대목이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연구자의 설명 대신 정조의 발언이 보다 직접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길흉을 가리는 것은 역서를 수찬하는 중요한 일이고 하늘을 공경하는 큰 도리이다.

예전에는 역관이 귀갑을 안고 남쪽으로 하고 천자가 곤면을 갖추고서 북쪽으로 한 것은 감히 판단할 수 없음을 보여서 하늘을 존경한 것이다. 하늘과 땅이 신들이 돕는 바와 일월성신이 임하는 바에는 따르거나 혹은 피했다. 이는 조정에서 흠준하여 분명히 섬기는 정성을 나타낸 것이다. 또한 백성에게 널리 알려 기운을 여는 것이 어찌 하늘을 존경하여 감히 판단하지 않는 뜻이 아니겠는가?

제사, 연하, 조회, 봉책, 힐융[군사를 다스림], 행행[넓은 의미에서 임금의 거둥]은 나라의 큰일이다. 또한 관혼, 거사, 입학, 교우는 백성의 큰일이다. 사연을 보고 점치는 방법으로 삼을 한 부의 완성된 책이 없을 수 있겠는가?

 

[참고문헌]

협길통의》《경국대전,경국대전주해,서운관지,속대전,대전회통,서운관지,한국서지,증보문헌비고,역사명원,성력고원,협기변방서

 

출처:  국립 공주대학교 구중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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